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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LO 그 다음

라는 글을 읽고 그 다음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다.

N포세대와 욜로 담론···포기에서 선택으로 라는 글을 읽었다. 이 글의 요지는 제목에 잘 드러나있다. 기존 삶의 방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으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 글쓴이는 욜로 담론이 포기에서 선택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삶을 ‘소비’보다는 ‘생산’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며 글을 마무리한다.

나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삶의 방식 뿐 아니라 삶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에 대한 관점도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자살이 삶을 이어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어나가지 않는 것으로 개인이 ‘선택’한다는 관점으로 말이다. (극단적인 상황이 아님에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

인간의 괴로움의 상당수는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를 견디는 것에서 온다. 미래에 대학 나와 취직하기 위해서 늦은 시간까지 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럼에도 취직은 어렵고, 취직 하더라도 삶은 여전히 퍽퍽하다. 그런 와중에 결혼이나, 아플 때나, 노후를 대비해 현재의 작은 즐거움 조차 쪼개어 미래에 양보해야 한다.

가치관이 변화하여 이제 결혼과 출산 정도는 포기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나를 포기하여 현재의 즐거움과 여유를 얻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더 많은 것을 포기할 수 있다면 사람은 더 큰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열심히 살며 현재도 한껏 즐긴다. 그 다음 어떤 미래로 향할 지는 온전히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더 이루고 싶은 게 있으면 삶을 더 이어나가고, 충분히 만족했으면 그대로 생을 마감하는 걸 선택하는 것도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온갖 이유로 자살을 막으려고 애쓴다. 불치병으로 고통받더라도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선택지만 있을 뿐 조력 자살은 허용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사회적 논리만 있을 뿐 개인의 선택과 행복에 대한 고려는 없다. 생을 마감하는 것은 꼭 아프고 힘든 순간이어야 할까? 가장 행복한 순간 그 감정과 함께 삶을 마감하는 것도 가능해야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기존에 사회가 부여한 역할과 관념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 같다. 네덜란드에서 불치병이나 말기 환자가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선택에 의한 조력 자살을 허용하는 것을 검토한 것이 그 예. 1 인간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로의 변화는 현재 진행중이다. 그 이후에는 삶을 이어나가는 것 조차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며, 그 때 인간은 비로소 더 큰 자유와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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