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에 학부 졸업합니다
35살에 대학원이 아닌 방통대를 시작한 계기와 졸업하기 까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
35살에 방통대를 시작한 계기와 졸업하기 까지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계기
게임 디자이너1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개인적 관심과 조직의 필요에 따라 개발과 데이터 분석으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나름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 근본이 없다는 컴플렉스가 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실력있는 프로그래머 친구가 방통대2를 추천했다. 커리큘럼도 괜찮고 교재 내용도 괜찮다는 것. 그걸 계기로 좀 더 알아보니 레지던트 하면서 논문쓰기 위해 통계학과 다니는 분도 가까이에 있었다.
그렇게 방통대 컴퓨터과학과에 3학년 편입하게 되었다.
시작하자마자 위기
입학하자 마자 전공 핵심 과목으로 가득 채웠다. 필요한 지식을 빠르게 배우는 게 목표였기 때문이다.
6과목을 주 6일 매일 1시간씩 수업 듣고, 주말에는 시간을 더 내어 추가로 공부했다. 약속이 있거나 야근이 있는 날이면 주말에 시간을 더 써야했다.
공부하는 것은 힘들지만 무척 즐거웠다. 실무에서 개발하던 것들의 정확한 원리를 알아가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첫 학기는 잘 보냈으나 두번째 학기에 바로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 매일 밤 1시간 전화하고 주말에는 데이트를 하니 시간이 모자라 잠을 줄여야했다. 하지만 동기부여는 최고조에 달해 올 A+로 학기를 마쳤다.
결혼할 결심
결혼할 사람은 느낌이 바로 온다.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내게 현실이 되었다. 세번째 학기를 시작했다가 당시 여친이었던 아내를 돌봐야하는 일이 생겨 한 학기 휴학했다. 그 다음에는 결혼 준비를 하게 되어 한 학기 더 휴학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혼을 온전히 즐길 것인가 바로 복학할 것인가 선택해야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 졸업하지 못하면 영영 졸업 못할 것 같았다. 아내와 상의하여 복학하기로 결정했다.
내친 김에 복수전공
복학하며 통계데이터학과를 복수전공 하기로 했다. 첫 1년에 컴퓨터과학 전공수업만 들었더니 졸업학점을 일찌감치 채워버렸다. 관심없는 전공이나 교양을 듣느니 한 학기 더 다니더라도 복수전공으로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첫 1년과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다니며 신혼을 보내며 방통대를 다녀야하는 상황. 방통대는 3순위로 밀려서 첫 1년처럼 매일 1시간씩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는 시간은 출퇴근 시간밖에 없었다. 지하철에서 사람에 치이며 교재도 못 보고 필기도 할 수 없기에 밀도는 매우 낮았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밖에 없었다.
방통대 한 두 학기 잘 다니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졸업까지 꾸준히 하는 게 어렵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워라스밸
4, 5, 9, 10월은 날씨가 좋아 놀기 좋은 때이다. 하지만 학생에게는 과제와 시험을 준비해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 부분이 연애할 때 괴로운 지점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우선순위가 명확해졌다. 내가 공부하는 것은 아내와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고, 신혼인 지금은 지나가면 다신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 때는 그냥 내려놓고 즐겁게 놀았다.
그렇게 Work, Life, Study 3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마지막 학기까지 무사히 마쳤다.
후기
현실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경력 12년에 학사 학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시험 공부하느라 정신없다고 하면 다들 “대학원 다니시나봐요” 라고 이야기할 정도니까.
실무에 써먹을 일도 없다. 현재 언리얼 엔진으로 신규 개발을 하고 있는데, 알고리즘을 쓸 일도 없고 초기 개발 단계라 통계를 써먹을 일도 없다.
그렇지만 필요할 때 꺼내쓸 수 있는 지식이 생겼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긴 시간 포기하지 않고 마쳤다는 성취감도 있다. 방통대 졸업하고 다시 입학하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대학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그간 기다려준 아내를 위해 한동안은 놀기 좋은 날에 놀러다니고 자녀 계획에도 충실할 예정이다. 일단 쉬어가다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