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엔진으로 인테리어하기
언리얼 엔진으로 이사 갈 집과 가구를 모델링해 실제 인테리어에 활용한 이야기
작은 집으로 이사하며 가구 배치를 전면 다시 생각해야했다. 직접 공간과 가구의 치수를 측정하여 도면을 그리고, 게임 엔진으로 가구를 미리 배치하며 이사를 해본 과정을 소개한다.
2026년에 정확한 도면이 세상에 없다니
이사를 준비하며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가구 배치였다. 새 집은 이전 집보다 조금 작았다. 거실이 넓어진 대신 각 방이 작아져 대대적인 가구 재배치가 필요했다. 이삿날 실제 가구를 들인 뒤에야 문제를 발견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가구 배치를 미리 정해놓고 싶었다.
당시는 이사 외에도 프로젝트 런칭, 아기 돌잔치까지 인생에서 중요한 이벤트가 겹쳐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가급적 오늘의집 3D 인테리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서비스에 등록된 도면의 치수가 실제 공간과 전혀 맞지 않았다. 네이버 부동산, 호갱노노에 등록된 도면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 치수가 서로 다르기까지 했다.
작은 집에서는 가구가 들어갈지 판단할 때 1cm의 차이도 중요하다. 정확하지 않은 도면 위에서 가구를 옮겨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정확한 도면을 구할 방법을 찾다가 건축행정시스템 세움터에서 건축물현황도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는 당시 내가 소유자나 임차인처럼 발급 자격을 갖춘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줄자를 들고 이사 갈 집으로 갔다.
줄자로 집 측정하기
방과 거실의 크기부터 벽, 문, 창문의 위치까지 하나하나 측정했다. 번거롭기는 했지만 가구 배치에 필요한 정확한 수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공간의 크기만 알면 충분할 줄 알았다. 집으로 돌아와 가구 배치를 고민하다 보니 콘센트와 스위치 위치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상을 놓을 벽에 콘센트가 있는지, 가구가 스위치를 가리지는 않는지까지 확인해야 했다. 결국 한 번 더 방문하여 이번에는 완벽하게 측정할 수 있었다.
이제 직접 잰 수치로 평면도를 만들 차례였다. 인테리어 서비스에서 도면을 그릴 수도 있었지만 그 서비스에서 도면 그리는 방법을 새로 배워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한번 쓰고 말 서비스 사용법을 배우느니, 배워두면 두고두고 쓸 일이 있는 도구를 사용해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도구는 게임을 만드는 언리얼 엔진이었다.
언리얼 엔진은 유니티 엔진과 함께 게임 개발 엔진의 양대 산맥이다. 이 중 언리얼 엔진은 특히 방대한 기능을 갖추고 있어 게임 개발자도 일하면서 자기 분야 외의 영역을 만질 일은 잘 없다.
나 역시 레벨게임이 진행되는 공간을 다루는 일은 잘 없었기에 이참에 배우며 만들어보기로 했다.
게임 엔진으로 집 만들기
언리얼 엔진에서 실제 치수에 맞춰 벽과 문을 배치했다. 내가 측정한 것과 단 1cm의 오차도 나지 않도록 만들었다. 멋진 건축 시각화가 목적은 아니었기에 욕심은 내려놓고 필요한 부분만 단순하게 만들었다.
이제 가구를 만들 차례였다. 사진을 3D 모델로 만들어주는 Meshy.ai 와 같은 서비스를 써보았지만 생각보다 퀄리티가 좋지 않아서 버렸다. 더불어 모양의 정확성보다 치수의 정확성이 더 중요했기에 자동 생성은 더욱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Blender를 배워서 만들어볼까 했지만 지금 시점에 하기에는 배 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냥 언리얼 모델링 기능을 튜토리얼 보고 배워서 만들기로 했다. 이 유투브 영상이 유쾌하고 유용했다.
집에 현재 있는 가구와 새로 구매를 고려하는 가구를 실제 크기에 맞춰 모델링했다. 정교한 형태가 아니라도 가구가 차지하는 공간과 주변 동선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로는 정확하게 만들었다.
회색 상자만 늘어서 있으니 어느 것이 어떤 가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가구마다 재질에 따른 최소한의 색을 넣어주자 배치에 대한 가독성이 훨씬 좋아졌다.
아내의 눈으로 살펴보기
아내와 함께 화면을 보며 가구를 이리저리 옮기고 회전시켜보았다. 안방에 침대를 놓고 붙박이장을 설치할 수 있을지, 드레스룸에 책상 2개를 두면 일할 공간이 충분할지 등 여러 시나리오를 미리 생각해볼 수 있었다.
가구가 들어가는지만 확인해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간 안을 직접 걸어 다닐 수 있는 캐릭터를 추가했다. 아내의 키에 맞춰 캐릭터와 카메라의 눈높이를 설정했다. 아내에게 집 안을 직접 돌아다녀보도록 했다. 덕분에 실제 시야에서 답답하게 보이지는 않는지, 가구 사이를 지나다니기 편한지를 이사 전에 미리 경험할 수 있었다.
이사 대성공!
아내와 여러 배치를 시험한 끝에 최종안을 정했다. 이삿날에는 가구 배치를 출력하여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보여주며 각 가구가 들어갈 방과 위치를 설명했다. 말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했고, 현장에서 다시 배치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모든 가구가 계획한 위치에 한 번에 들어갔다. 이후 문제가 생겨서 가구를 다시 배치할 일도 없었다. 언리얼 엔진 상에서 여러 배치를 시험한 덕분에 시행착오를 완전히 피할 수 있었다.
이사도, 아기 돌잔치도, 프로젝트 런칭도 무사히 마쳤다. 욕심을 내려놓고 핵심 목적에 집중한 덕분이 아닐까. 세상에 “이렇게 이사하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분이 있다면 이 글은 성공적이다.





